홍(洪)씨는 한국의 성씨 및 중국의 성씨다.

 

연원
홍(洪)씨는 중국 돈황(감숙성 서북부)의 공공씨(共工氏) 후손이 원수를 피해 공(共)자에 수(水)자를 붙여 홍(洪)자을 만들어 성씨(姓氏)로 삼은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리고 크게 황제와 염제 계통으로 나뉘며, 후대에 5가지 계통이 추가되어, 7~8가지 계통이 된다고 한다.

한국의 홍(洪)씨는 당 태종(太宗)이 여덟 명의 학사를 문화사절(文化使節)로 고구려에 파견할 때 그 중의 한 사람으로 들어온 홍천하(洪天河)의 후손으로 전한다.

홍천하는 고구려에 들어와 유학(儒學)을 가르치고 문화(文化)를 널리 개척했으며, 고구려가 망하고 삼한 통합(三韓統合)에 따라 신라(新羅) 선덕여왕(善德女王) 때 유학(儒學) 발전에 공(功)을 세워 문무왕(文武王) 때 당성(唐城 : 남양의 옛 지명) 백(伯)에 봉해지고, 신무왕(神武王)이 태자태사(太子太師)로 추대했으며 효소왕(孝昭王)은 당성후(唐城候)를 삼았다고 한다.

한국 홍씨 가운데 인구수가 가장 많은 대본으로,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는 당홍(唐洪)과, 고려 고종(1213년) 때 금오위별장을 지낸 홍선행(洪先幸)을 시조로 하는 토홍(土洪)으로 나뉜다.

 

남양 홍씨 (당홍)
남양 홍씨(당홍)는 시조는 당나라에서 고구려, 신라을 거쳐 한국에 정착하여 당성(唐城 : 남양의 옛 지명) 백(伯)에 봉해진 홍천하(洪天河)이다. 이후 고려 태조(918년) 때 삼중대광(三重大匡), 태사(太師)를 지낸 홍은열(洪殷悅)을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분파로는 부계 홍씨가 있다.

 

남양 홍씨 (토홍)
남양 홍씨(토홍)의 시조는 고려 고종(1213년) 때 금오위별장을 지낸 홍선행(洪先幸)이다. 그의 선계는 문헌이 실전되어 정확하게 상고할 수 없으나, 후손들이 당성(남양)에 정착 세거하며 가세가 크게 번창 하였으므로, 본관을 남양으로 하였다고 한다.

 

홍주 홍씨
홍주 홍씨의 시조는 고려 태조 때 삼한삼중대광을 지내고 해풍부원군에 봉해진 홍규(洪規)이다. 이후 후손들은 해풍에 세거하며 홍주를 본관으로 세계를 이어왔다.

 

풍산 홍씨
풍산 홍씨의 시조는 고려 고종(1213년) 때 국학지학을 지낸 홍지경(洪之慶)이다. 그는 1242년(고려 고종 29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국학직학을 역임한 후 풍산에 정착 세거하여, 풍산을 본관으로 하였다. 풍산 홍씨는 고려 후기, 조선 시대에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세도 가문으로서 명성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