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15세기에 조성된 하회(河回)마을과 양동(良洞)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씨족 site_1324_0001-594-0-20100805164021.jpg마을이다. 숲이 우거진 산을 뒤로 하고, 강과 탁 트인 농경지를 바라보는 마을의 입지와 배치는 조선 시대(1392~1919) 초기의 유교적 양반 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 옛 마을은 주변 경관으로부터 물질적, 정신적 자양분을 함께 얻을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는 종가와 양반들의 기거했던 목조 가옥, 정자와 정사, 서원과 사당, 옛 평민들이 살던 흙집과 초가집 등이 있다. 17세기~18세기의 시인들은 정자와 쉼터에서 마을을 둘러싼 강과 산과 나무의 경치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시를 지어 노래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500년 동안 조선을 통치하였던 양반들의 문화가 꽃핀 한반도의 남동부 지역에 있다. 두 마을은 거리상으로 90㎞ 정도 떨어져 있다. 두 마을은 14세기~15세기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18세기~19세기 후반에는 규모도 커지고 구성도 확대되었다. 두 마을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 마을 입지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태이고, 지역의 기후 조건에 적합한 건물의 형태와 유교 예법에 맞는 가옥으로 이루어졌다.

마을에는 씨족 마을의 대표적 요소인 종가와 양반들이 살았던 크고 튼튼한 목조 가옥, 정자와 정사, 유교 서원과 서당 등이 남아 있다. 또한 평민들이 살았던 단층의 작은 흙집과 초가지붕을 얹은 초가집들도 있다. 정자와 휴식처에서 보이는 마을 주변의 산과 나무, 강의 경치는 17세기~18세기 시인들이 시로 읊었을 만큼 아름답다. 두 마을의 전통 가옥들과 마을의 입지와 배치가 이루는 탁월한 조화는 조선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잘 보여 주는 사례로 꼽힌다. 특히 씨족 마을의 형성이라는 특징적인 체계는 이 지역에 고유한 것으로 500여 년 동안 발전되어 왔다.

완전성

씨족 마을의 대표적인 구성 요소인 양반의 가옥과 평민의 가옥, 공간 배치의 형식, 서당과 서원 등이 유산으로 등재된 이 두 마을에 있다. 하회마을에는 동쪽 4㎞ 지점에 병산서원(屛山書院)이 있고, 양동마을에는 옥산서원(玉山書院)과 동강서원(東江書院)이 마을에서 각각 8㎞, 4㎞ 떨어진 곳에 있다.

문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강과 숲, 산이 어우러지는 조화로운 경관은 하회마을에서 주로 볼 수 있고, 양동마을에서는 그 완전성이 약간 떨어진다. 양동마을에 흐르는 안락천 개울과 수운정(睡雲亭)에서 바라보이는 안강평야와 산등성이는 등재 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유산은 최소한의 부작용 외에는 개발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