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붉은 단풍으로 유명한 북경시 향산기슭에는 중국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을 비롯해 군의 W020110121381010128315.jpg 주요부문이 많이 자리하고있다. 중국조선족과학자협회의 소개로 군사과학원 주변에 위치한 남상호교수의 저택을 찾은것은 2010년 10월 8일이였다.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에서 군사암호연구를 진행했던 교수로서 엄청난 기술을 발명했다는 소개를 받았지만 쉽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군사암호라면 비밀전문을 만들고 상대의 비밀전문을 해독하는 기술이 아닌가? 엄청난 기술을 발명했다고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군 내부의 기술성과일것이 아닌가?” 그만큼 필자는 군사암호 교수과 수학, 물리 등 첨단기술을 고심히 연구하는 과학자를 련결시킬수가 없었던것이다.약속대로 문을 떼고 들어서니 백발의 남상호교수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반겨주었다.

    “인류사회는 농업문명, 공업문명을 지나 지금 정보문명시기를 겪고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의 문명은 무엇이겠습니까? 학계에서는 이 문제를 많이 생각하고있습니다. 얼마전 한국 ‘천안호’사건이 있은 다음 미국이 인터넷전쟁사령부를 설립했다면서 우리도 인터넷전쟁사령부를 세워야한다고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았는데 나는 이를 반대했습니다……”

    자리에 앉은뒤 남상호교수은 곧바로 이처럼 엄청난 화제를 꺼내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미국이 인터넷전쟁사령부를 설치했다고하여 우리도 인터넷전쟁사령부를 세워야한다는 주장은 랭전시기의 사유방법이고 공업문명시기의 아주 뒤떨어진 생각이라는것이 그의 주장이였다. 그리고 가령 인터넷전쟁을 한다하더라도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미국을 이길수없다고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안전시스템이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에 인터넷전쟁을 할수도 없다는것이다. 왜냐하면 인터넷전쟁의 가장 중요한 무기인 바이러스 살포는 적아를 식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을 공격하는 동시에 자기도 쉽게 감염될수있다는것이다.

    남상호교수의 리론에 따르면 지금의 인터넷세계를 구축하고있는 핵심인 인터넷주소 보안암호는 무질서하게 임의로 편성되였지만 암호를 쉽게 풀수있다. 전보의 암호를 풀이하는것처럼 인너텟주소 보안암호를 쉽게 풀수있기 때문에 정보의 안전성을 담보할수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있다. 그리고 인터넷정보 발신지 주소(Sourcedddress)를 인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국제표준도 여러가지 애로를 겪고있는 상황이다. 지금의 인터넷정보는 모두 인터넷주소에 따라 전파되기때문에 가장 먼저 인터넷주소를 작성한 미국을 꼭 거쳐야하며 써버를 통해 모두 미국인에게 먼저 인식되고있다. 그러므로 국가보안정보든지 개인 비밀정보든지 철저한 보안을 실현할수없다.

미래 인터넷세상을 안전하고 청결하며 고속도 무한대 용량을 실현하려면 철저한 보안조치가 따라가야하는데 그 핵심기술이 바로 CPK(Combned Public Key)전자암호기술이라고했다.

    남상호교수는 다년간의 꾸준한 연구를 거쳐 철저한 정보보안과 정보진위 식별능력을 구비한 CPK전자암호 체계를 구축해놓았던것이다. CPK전자암호를 토대로 구축한 그의 정보 비밀키 작성과 인증, 확인체계는 학계를 놀래웠으며 국제비밀안호분야의 깊은 중시를 불러일으켜 바야흐로 인터넷 주소 보안암호의 국제표준으로 추진되고있다.

    인류문명으로부터 인터넷전쟁, 새로운 인터넷세상의 국제표준화에 이르기까지 거창한 이야기가 계속 되는 가운데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20여년간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연구실에서 군사비밀연구에만 몰두하였던 남상호교수는 사실 줄곧 베일에 가리워져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많은 연구분야가 군사전략과 기술에 관계되기에 세상에 공개할수없었던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연구와 기술은 언녕 단순한 군사적 의미를 벗어나 정보화시대의 핵심인 인터넷보안과 새로운 인터넷세상을 구축하는데에 이르고있다.

    남상호교수와의 첫 만남에서 필자는 인류의 차세대 문명을 맞이하기 위해 인터넷세상을 바꾸어가는 진정한 과학자를 만났다는 흥분을 감출수없었다. 

    올해 83세인 남상호교수는 국가비밀국 기술고문, 국가정보안전 중점 연구실 기술위원회 부주임, 해방군 정보공정대학 겸직 교수, 북경대학 정보과학기술학원 겸직 교수 등을 력임하면서 정보안전 연구와 교수에 수십년간 정진해왔다. 그는 우리나라의 첫 전자암호기를 연구, 제작하였으며 선후로 국가와 군 과학기술 진보 1등상, 2등상을 수상했다.

    30년대말 일제통치하에 있는 길림성 연길시에서 태여난 남상호교수는 일본학교인 국민우수학교를 다니면서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자주 다녔다고 한다. 거기에서 그는 서양인 신부, 수녀들에게서 영어자모를 배우기도하고 조선인 신도들에게서 우리말을 배웠다. 그후 고중에 입학한후 남상호교수는 다윈의 리론을 접하면서 점차 유물주의 인생관을 형성하기 시작하였고 과학에 재미를 느끼게 되였다.

    남상호교수는 조선전쟁의 포화가 가져진지 얼마 안된 1955년 여름에 연길을 떠나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에 뽑혀와 입대하게 되였다. 그는 우선 총참모부 산하의 정보공정대학에서 4년간 공부한후 군 암호연구사업에 종사하였다. 산서성의 깊은 산골에 위치한 군 정보기지에서 그는 소리없이 20년이란 시간을 묵묵히 암호연구에만 몰두하였다.
    당시 랭전체제하에서 국가군사비밀을 지키고 적대국의 비밀암호를 풀이하는 작업이 주로 되였다. 그리고 정치구호가 많았던 당시 그는 “우리가 땀 한방울을 많이 흘리면 전선의 아군 전사들이 피 한방울 적게 흘린다!”는 구호밑에 끈질기게 일만하였다. 지루하기만 하였던 수많은 암호들을 수집정리하고 그것들을 다시 배렬하면서 하나하나의 암호를 풀이해나갔던것이다.

    20년이란 시간을 그는 산서성의 심심 산골에서 보내면서 일반 과원으로부터 조리연구원, 부연구원, 연구원으로 승진하였고 연구분야에서도 많은 성과를 따냈다. 이시기의 연구는 어디까지나 정치임무였고 군의 적대사업의 수요였다.

    1959년, 군에서는 우리나라 첫 계산기를 실제에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기계에 접한 남상호교수는 신대륙이나 발견한것처럼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난해한 영문소개서를 부지런히 탐독하면서 계산기 기술을 익혔고 자기가 익힌 기술을 다시 기타 과원들에게 배워주었다.

    1970년 8월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국방 고속통신망을 구축하기 시작하였고 남상호교수는 부대설비인 중국의 첫 전자암호기의 설계사업에 참가하였다. 그는 4년의 노력을 들여 중국의 첫 전자암호기 견본기계의 연구제작에 성공함으로써 당시 국무원 총리였던 주은래의 중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기타 부문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특히 총참모부 기요부문의 반발이 심했다. 왜냐하면 과거 비밀전문은 반드시 기요부문을 거쳐 발송되고 접수되는것이 관례였다. 기요부문에서는 전문을 접수한후 비밀암호를 부착시켜 발송하거나 상대의 비밀암호를 풀이해 보고했던것이다. 그리하여 늘 두툼한 비밀암호 풀이책을 들고다녀야했고 그것도 한주일 한번씩 모두 새것으로 바꾸어야만했다. 왜냐하면 같은 암호를 한주일이상 사용한다면 적대국에서 그것을 쉽게 풀이할수있기 때문이였다. 모두 수동으로 진행하는 기요실의 작업량은 엄청 많았다. 그러나 남상호교수가 발명한 전자암호기는 자동으로 전문에 암호를 주입하거나 비밀암호를 풀이해냈기 때문에 기요실에서는 갑자기 할일이 없게 되였던것이다. 군의 가장 핵심부문의 하나였던 기요실이 유명무실해졌고 따라서 지위와 대우도 떨어질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자연 기요실 일군들이 반발이 컸던것이다. 그리하여 주은래총리도 끝내 전자암호기 견본기계를 직접 보지 못하고말았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은 무엇으로도 막을수없는 법이다. 1978년부터 중국인민해방군에서는 전자암호기를 본격 사용하였으며 중국의 전자암호사업은 수공작업으로부터 해방되여 일약 전자화를 실현하게 되였다. 그리고 세계 발달국과의 격차도 10여년 단축시키게 되였다.
    1986년, 미국에서는 국방네트워크 안전비밀 규모화 시스템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듬해 중국에서도 국방네트워크 안전비밀 규모화 시스템 연구임무를 남상호교수에게 맡겼다. 예산 규모는 10만이였다. 10만개 군 단위가 서로 통신을 자유롭게 할수있지만 기타 제3자는 절대 통신망에 들어오지 못하게 차단하는것이였다. 남상호교수는 수많은 암호와 수치들과 밤낮없이 씨름하면서 장장 5년 시간을 들여 끝내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완수해냈다. 10만개 단위가 서로 안전한 통신키를 리용해 통신하지만 제3자는 암호키를 풀지못해 정보를 도취할수없도록, 더블키기술을 적용했던것이다.

    더블키기술로하여 남상호교수는 미국이 일년 앞당겨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한 국방네크워크 안전비밀 규모화 시스템 연구를 5년만인 1991년에 완수했던것이다. 이를 토대로 중국인민해방군은 전군지휘체계 자동화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였고 지금은 자동화시스템 2기 공사를 마치고 3기공사를 진행하고있는 중이다.

    지난세기 90년대 컴퓨터가 일반인에게까지 신속히 보급되면서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부대에서 뛰여난 기술발명과 성과로 제반임무를 완수한 남상호교수는 행정직함 부군장급(중장계급에 버금감)과 전직간부라는 기술직함을 가지고 영광스럽게 퇴직하였다. 퇴작한후 그는 전자암호분야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뛰여난 최신기술을 가지고 신속히 발전하고있는 인터넷 정보 보안분야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군 부대의 연구가 아니기 때문에 더는 비밀적인것이 없어졌고 연구도 많이 자유스러워졌다. 그는 국가의 차원을 넘어서 전반 인류문명의 새날을 기약하는 원대한 사업에 시선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퇴직후 남상호교수는 정보안전기술을 인너텟, 정보통신, 컴퓨터인증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응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인터넷세상을 정화하고 보다 안전성이 있고 신뢰할수있는 인터넷세상을 만들어가는데 리용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인류에게 많은 편리를 가져다주는 동시에 또 위해성도 조성하고있다. 오류정보, 정보류출, 음란물 범람, 인권침해, 각종 사기와 범죄가 비일비재할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터넷을 리용해 국가핵심부문이거나 은행정보망까지 치고들어와 핵심정보를 도취하는 일까지 많이 나타나고있다. 이러한 위해성은 정보에 부착된 전자암호의 안전성이 강하지 못하고 정보출처가 불명확하여 인증할수없으며 정보에 대한 식별이 되지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해성을 언녕부터 감안한 남상호교수는 전자암호기술을 인터넷에 적용하면서 거듭되는 연구를 거쳐 드디어 CPK전자암호기술을 만들어냈다. 이 기술은 새로운 조합방식으로 인터넷에서 정보인증의 무한대 용량과 간편성을 동시에 실현했으며 철저한 보안체계를 실현하였다. 그리고 이 기술로는 정보에 대해 사전에 식별할수있으며 진위를 판단할수있다.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CPK전자암호기술은 전자암호키를 쌀알만큼 작은 소자에 설치하여 “전자신분비밀키”로 제작한후 컴퓨터의 플래쉬기억기에 끼워넣거나 은행카드에 장착할수있다. 이 “전자신분비밀키”를 사용하면 인터넷의 지지와 제3자의 공증이 필요없으며 식별인증규모가 거의 무한대에 달한다. 그리고 이 “전자신분카드”는 암호를 장악한 본인이 분실하였을 경우에 타인이 사용할수없다.

    지금 많이 류행되고있는 미국의 PKI기술은 최고로 천만개 사용호의 인증만이 가능하고 인증 절차가 번잡하고 속도가 더딘 단점을 가지고있다. 이 기술을 리용해 비밀통화할때 그 인증과정은 10초 걸리지만 CPK기술을 운용하면 인증시간이 1초도 걸리지 않는다.

    2008년부터 남상호교수의 CPK전자암호기술에 눈길을 돌린 국제비밀암호년차회의 집행위원회 주석인 제임스 휴스는 학계의 충분한 긍정을 받고 또 미래 비밀암호체제의 발전추세를 대변하는 이 기술을 보급할것을 적극 권장하고있다. 그는 유럽과 미국의 학자,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CPK전자암호기술을 토대로한 새로운 인터넷주소암호 국제표준화사업을 적극 추진하고있다.

    남상호교수는 인터넷주소암호 국제표준화가 나오기까지 아직 애로점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과학의 발전은 무엇으로도 막을수없는만큼 머지않아 꼭 실현될것이라고 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안정성이 높고 성능이 안정된 “전자비밀키”를 갖게 될것이다. 복제가 불가능한 “전자비밀키” 혹은 “전자신분증”의 출현은 인터넷세계의 일대 변혁으로 될것이라고했다. 

    남상호교수는 그동안 7명의 박사생과 많은 석사연구생을 양성해냈다. 총참모부 정보공정대학 정보안전학과 박사생 5명은 이미 정보안전분야의 후비력량으로 성장하였으며 북경대학의 두명 박사생도 이미 졸업해 남상호교수의 뒤를 계승하고있었다.

     “모든것은 자연의 섭리에 맞게 순리에 따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지 억찌를 부리지 말고 자연과 현실에 맞게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평생 군인과 과학자 이중신분으로 보내는 남상호교수는 필자와의 두번째 만남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경력이나 연구에서 언제나 순리에 따랐으며 큰 성과가 있다하더라도 모두 그럴만한 조건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고 총화하였다.

    조선전쟁이 있었기에 나라에서는 조선말과 글을 아는 대량의 인재가 필요했고 그래서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 비밀암호사업에 참가하게 되였고 사업에 참가한후에는 모든 비밀문서를 접촉하면서 정리하게 되였기에 관련 연구를 할수있었다고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군의 첫 계산기를 접촉하게 되였고 영문 소개서를 통해 남먼저 계산기 관련기술을 장악하게 되였으며 그때로부터 전자암호 보안에 관련한 기술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것이다. 이처럼 모든것이 객관적으로 형성되였다면서 모든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고 총화하는 남상호교수이다.

    “물을 다스림에 있어서 흐르는 물을 억찌로 막지 말고 물길을 잘 소통시켜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남상호교수는 공정대학 시절에나 산서성 산골에서 사업할때나 늘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일을 찾아했으며 미래 5년을 내다보면서 앞으로 성과를 낼수있는일에 최선을 다했던것이다.

    그는 CPK전자암호기술의 출현으로하여 인터넷 정보교류의 론리, 인증방법, 신뢰도를 비롯해 모든것이 다시 시작되여야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인터넷세상의 대변혁을 기대하면서 그는 과학은 무엇으로도 막을수없다고 강조하였다. 남상호교수가 만들어낸 세계 최고수준의CPK전자암호기술은 이제 곧 국제표준화기술로 확정되여 모든 네티즌들이 중국에서 만들어낸 “전자신분증”을 사용하게 될 날도 머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중앙인민방송국 김성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