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는 무상치

옛날 한 곳에 소싯적부터 글로 평생을 보낸 한 늙은 선비가 있었다. 그는 《논어(論語)》· 《맹자(孟子)》·《중용(中庸)》·《대학(大學)》·《서전(書傳)》·《시전(詩傳)》·《주역(周易)》, 《사서삼경(四書三經)》까지 많은 책을 읽었다. 그는 이로 하여 세상 만사를 무불통달한다고 생각하였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꼴머슴이 밖에서 여물을 썰다 들으니 노선비가 서재에서 글을 읽는데,《각자는 무상치》,《각자는 무상치》란 뿔을 가진 짐승은 윗니가 없다는 말이다라는 글귀를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얼마동안 글을 읽던 노선비는 서재에서 나오며 무슨 말인지 남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입안에서 중얼거렸다. 평복에다 관만 쓰고 나오는 것을 보아서는 외출하려는 것이 아니고 집 울안에서 소풍하려는 것이 분명하였다.

노선비는 정원을 한 바퀴 돌더니 행랑채 있는 데로 나갔다. 행랑채에는 머슴들이 다 일 나가고 상머슴만이 집안 일을 돌보고 있었다.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노선비는 외양 옆의 거름 밭에 매논 큰 부럼소 옆으로 가더니 소가 풀을 먹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상머슴이 불렀다.

《여봐라! 너도 이제는 나이 적지 않은데 아무리 무식하다 한들 저만한 일조차 모르느냐!》라고 첫마디부터 핀잔이었다.

상머슴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예-샌님, 무슨 분부이신 지요?》하고 물었다.

《야, 듣거라, 경서에 이르기를 경자는 역축이 좋아야 함이라 했나니라. 그런데 저런 노우로 어떻게 농사를 잘 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저 소를 속히 개비하도록 하여라!》

《예이-,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상머슴은 주인인 노선비가 힘쓰고 부리기 좋은 황소의 무엇을 보고 개비하라는 지는 몰랐지만 그는 세상만사를 통달한다는 학자이므로 자기들이 보지 못한 것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주인이 친히 분부한 것이니 할 수 없어서 아까운 데로 그 소를 팔고 대신 부림새 좋을 것 같은 소를 사왔다.

그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노선비는 또 소풍하러 나왔다. 그는 전일 자기가 시킨 것을 제대로 했는가 생각났던지 행랑채로 와서 마당에 매논 소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노여움이 나서

 《야, 이 무식한 놈아, 어째 또 이런 노우를 사왔느냐?!》 라고 꾸짖었다.

상머슴은 역시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나 《노우》라는데 무슨 영문이 있는 것 같아서

《예이- 샌님. 이 소는 이제 나릅이올시다.》라고 하였다.

《나릅이라니?》

《예이, 네 살이라는 말입니다.》

《무식한 놈들, 사세면 사세고 네 살이면 네 살이지 나릅이 무엇이냐!》

노선비는 상머슴을 무식한 자라고 자못 조롱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말을 이어

《사세고 삼세고간에 윗니가 다 빠지고야 어떻게 초를 먹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저리 우물거리는 것이 아니냐? 초를 많이 먹지 못하는 소가 어찌 일을 하겠느냐!》라고 노해하였다.

상머슴은 그제야 노선비가 나릅에 나는 소를 늙었다고 하는 뜻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말이라 대답도 해석도 못하고 속으로만 웃을 뿐이었다. 그대 꼴머슴이 꼴을 베여 지고 돌아왔다. 그는 노선비의 말을 듣고 있다가,

《샌님! 소인들이 무식하오나 어느 때 샌님께서 글 읽으시는 것을 들은 적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당돌한 놈 같으니 무슨 글귀를 엿들었느냐?》

《예이. 죄송하오이다. 그때 샌님이 서재에서 글을 읽으시는데 <각자는 무상치>라고 하시는 말을 들었습니다.》

《뭣이라냐? 그렇다. <각자는 무상치>라 하였느니라!》

노선비는 무안 당한 듯 종발걸음으로 서재를 들어가 고서를 뒤척이더니 쳐들고 나서

《각자는 무상치! 각자는 무상치!》라고 외우다가,

《옳다, 뿔 있는 자는 윗니가 없느니라!》라고 할 뿐 다시는 행랑채로 나오지 못하더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