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뛰기

놀이유래:

그네뛰기는 예로부터 조선민족 녀성들이 즐겨온 민속놀이며 민족적정서와 향취를 풍기는 민족체육의 하나이다.

그네를 지방에 따라 ≪굴리≫,≪굴레≫,≪굴기≫,≪훌기≫,≪궁구≫,≪군디≫라고도 이르며 한어로 ≪추천≫, ≪비선희≫라고도 부른다.

흘러간 세월에 사람들은 그네를 흔히 동네 어귀나 백사장을 낀 버들방천이나 전망좋은 등산에 서있는 아5133.jpg름드리 느티나무, 버드나무 또는 로송나무의 큰 가지에 맸다. 그네뛰기경기를 할 때에는 경기장이나 놀이판에 특별히 그네틀을 세우고 그네줄을 맸다. 이렇게 인공적으로 가설한 그네를 ≪땅그네≫라고 한다. 그네줄에는 앉을깨(발판)를 얹어서 두발이 편하게 놓이여 잘 구를수 있게 하고 부드러운 무명으로 안전줄을 매여 줄 잡은 두손목을 그네줄에 련결시킴으로써 그네를 뛰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놓고 구르고 챌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안전줄 매는 방법은 근세부터 있게 된 것 같다.

지난날에 그네뛰기는 일반적으로 음력 4월 초파일무렵에 시작해서 5월단오날까지 약 한달동안 계속되였는데 특히 단오날에는 그네뛰기경연대회를 여는 것이 통례였다. 이날에는 오랜 봉건유습에서 기인된 심한 내외법으로 하여 일년 내내 집대문안에서 바깥구경을 못하던 젊은 녀인네들이 이날만은 너나없이 계절에 어울리는 새옷차림을 하고 그네터로 몰려가서 그네뛰기로 하루를 마음껏 즐기면서 저물어가는 줄도 몰랐다. 또한 이날의 그네뛰기는 처녀들이나 젊은 부인들만 한 것이 아니라 중년부인들도 한몫 끼였으며 또 어떤 지방에서는 늙은이들까지 앉은그네나마 한번씩 뛰여보군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네뛰기경연대회때에는 그네에 몸을 실은 녀인이 높이 올라가는것으로 승부를 결정하였는데 그 구체적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가 있었다. 첫째로, 그네를 적당한 곳의 나뭇가지에 맨것만큼 앞에 나뭇가지 또는 꽃가지를 목표물로 정하고 또는 꽃가지를 목표물로 정하고 그네가 앞으로 솟아오를 때 그것을 발끝으로 차거나 입에 무는것으로 내기를 하였고 둘째로, 그네앞쪽 적당히 떨어진 곳에 방울줄을 높이 달아놓고 그네가 앞으로 솟아오를 때 방울줄을 몇번이나 찼는가 하는것으로 승부를 결정하였고  셋째로, 그네의 발판밑에 자눈을 박은 줄을 매달아 그네가 올라갔을 때 줄이 정지점에서 공중 얼마나 올라갔는가를 측정하여 우렬을 결정하기도 하였다.

그네를 혼자 뛰기도 하고 두사람이 마주서서 뛰기도 하는데 전자를 ≪외그네뛰기≫라 하고 후자를≪쌍그네뛰기≫ 또는 ≪맞그네뛰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쌍그네는 여흥적으로 뛰는 것이지 경연대회에서는 뛰지 않는다.

그네뛰기는 조선민족녀성들의 몸과 맘을 단련하는데 적합한 운동이며 그들의 우아하고 명랑하고 씩씩한 모습을 구김없이 펼쳐보여주는 놀이이다. 지난날 해마다 5월단오가 되면 아름드리 큰 나무 가지에 휘영청 늘어지게 그네줄을 매놓고 울긋불긋 곱게 차려입은 젊은 녀인들이 그네줄에 몸을 싣고 바람에 치마자락을 휘날리며 소리개같이 반공에 높이 솟아올랐다가 물차는 제비와도 같이 내리여 날래게 땅을 스치는데 그 모습은 마치 한폭의 움직이는 그림과 같았으며 ≪선회≫와도 흡사했다. 고전명작≪춘향전≫에서는 춘삼월 어느날에 춘향이 광한루앞로변에서 그네뛰는 장면을 묘사하였는데 이는 상술한 정황을 련상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

과거에 이처럼 우아한 그네뛰기는 총각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또한 총각들과 그 부모들은 그네뛰는 때를 남의 집처녀의 선을 보는 좋은 기회로 삼았다. 그리하여 ≪춘향전≫을 비롯한 우리 민족의 옛소설들에는 그네를 뛰다가 사랑을 맺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며

그네뛰기를 시적게기로 삼은 민요들이 많이 창작되였다.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있는 그네뛰기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법들이 있다. 어떤 학자들은 ≪북방융적들이 한식이 되면 그네뛰기를 하여 가볍게 뛰여오르는 것을 연습하였는데 후일에 중국녀자들이 그것을 배웠다.≫는 문헌적 기록에 근거하여 여기서 말하는 ≪북방융적≫이란 우리 민족의 조상인 고대종족을 가리킨것이라고 하면서 아주 먼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조상들이 그네뛰기를 즐기였다고 한다. 또 어떤 학자들은 ≪동국세시기≫에 기록된 상술한 추측을 배제하면서 그네뛰기가 원래 북방 새외종족의 놀이던 것이 춘추시대에 제국을 거쳐 중국에 류입되고 당조때에 궁중놀이로 성행하다가 다른 잡회와 함께 우리 민족에게 전래된것이라고 주장하고있다. 이밖에 민간에서도 그네의 유래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고있는바 옛날 강릉의 문무겸전한 한 위인이 밤마다 파리와 모기 등 날벌레가 덤벼들어 귀찮게 굴기 때문에 생각끝에 그가 파리나 모기를 피하기 위하여 요람을 만든 것이 그네의 시초였다고 한다.

보다싶이 그네뛰기의 유래에 대한 설법은 매우 구구하다. 그러나 고려 고종대에 최충헌,최이부자가 가끔 궁전뜰이나 자신의 저택정원에서 호화로운 추천회를 거행했다는 문헌기록을 보거나 또 같은 고종때에 나왔다는 ≪한림별곡≫의 제1절에 그네에 관한 대목이 있는 것을 미루어보아 대체로 13세기초부터 당시의 문헌들과 작품에 그네뛰기가 언급되고있는바 그 유래가 오래다는 것을 확인할수 있다. 문헌에 의하면 13세기초에 벌써 자연수목에 그네줄을 매고 뛰였을뿐만아니라 놀이판한가운데 그네틀을 세워 그네줄을 매고 채색비단과 꽃으로 장식한 일이 있었다.

그네뛰기는 리조시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더욱 성행하여 전민적인 놀이로 발전되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 그네뛰기는 단순한 오락일뿐아니라 일정한 기준을 정하고 높이 뛰여오르기를 다투는 경기적인 성격을 띤 놀이로 되였다. ≪성종실록≫에 의하면 15세기에 서울인민들은 단오가 되면 서울 한복판 종로 네거리 뒤골목에 화려하게 그네터를 설치하고 서울시내를 남북 두패로 나누어 내기를 하였는데 그런 때에는 서울안의 부녀자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또한 15세기의 시인 성현이 지은 시에 의하면 벌써 15세기에 경기에서 그네가 솟아올라가는 높이를 측정하기 위하여 그네줄앞에 높게 방울줄을 다는 방법이 있었다.

조선민족 녀성들의 전신운동에 유익하고 민족적특성이 농후한 그네뛰기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자기의 생명력을 과시하였고 지금도 인민들속에서 성행되고있다.